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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편집자 시점의 콘텐츠 소비

(빨리 감고, 건너뛰고, 요약해서 보는)

인용 글. LG경영연구원 채윤하


영상 콘텐츠가 역사상 가장 값싼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은 많은 콘텐츠를 빠르게 섭렵하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 이고 있습니다. ‘시간의 가성비’를 추구하는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를 소개하고 기업들이 고민할 만한 포인트를 짚어 보았습니다.


2023년 5월, 일본 아사히TV는 심야 토크쇼 ‘소레이루? 롯폰기카이기(ソレいる?六 本木会議)’를 이례적으로 1.2배 빠르게 방영했다. 이 대담 프로그램은 비인기 심야 시간대에 젊은이들의 고민거리나 사회 이슈를 다루는데, 해당 회차의 주제는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삶 속 TV의 존재 가치’였다.



실험적인 ‘이단(異端)의 편집’을 보도 한 기사에는 5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알아듣기 어렵다거나 왜곡된 영상이 불편하 다는 반응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기존 TV 프로그램에 불필요한 반복이 많다는 지적 과 함께, 젊은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은 1.2배 이상의 속도로 보고 싶다는 의견도 있 었다. 빠른 콘텐츠 경험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을 위해 공중파 방송까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더 빠르고, 더 간편하게, 더 많이


1) 신속한 정보 습득: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


‘빨리 감기’와 ‘건너뛰기’는 동영상 강의를 볼 때 주로 사용되던 시청 방법이다. 영상 을 빨리 감거나 장면을 건너뛰면 음성이 우스꽝스럽게 변형되고 주요 내용이 누락될 우려가 있지만, 제한된 시간 내에 학습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속도를 높이고 묵음 구 간을 건너뛰는 것이 필수로 여겨졌다.


최근 소비자들은 감상을 위해 치밀하게 설계된 영화나 드라마조차 정상 속도로 끝까 지 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오늘날 인터넷에서는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자막 켜고 1.5배속이 국룰이다’라는 말이 회자 될 정도로 ‘빨리 감기’ 및 ‘건너뛰기’ 시청은 저변이 확대되어 있다.



이러한 행태는 비단 디지털 기기와 앱 활용에 능숙한 젊은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미쓰비시UFJ신탁의 조사에서는 20대 남성의 56.5%가 빨리 감기로 영상을 본다 고 응답했는데, 50대 남성의 46.9%도 같은 경험이 있다고 보고했다.


다시 말해, 세대 와 관계없이 45% 이상의 응답자들이 영상을 빨리 감기로 시청한 경험이 있었다.1 실제 넷플릭스의 ‘오프닝 건너뛰기’ 버튼은 매일 평균 1억3,600만 회나 이용되고 있 으며,2 유튜브 사용자들이 빨리 감기로 영상을 재생해 아낀 시간은 하루에 900년에 달한다.3 유튜브는 영상을 효과적으로 건너뛰며 볼 수 있도록 다른 사용자들이 ‘많이 본 구간'을 그래프 형태로도 알려주고 있다.


1 '「タイパ」実態', 三菱UFJ信託銀行×ヴァリューズ, 2023.2 2 ‘‘오프닝 건너뛰기’ 도입 5년, 그 기원을 돌아보다’, Netflix, 2022.3.18 3 ‘유튜브 “사용자, 동영상 1.5배속으로 제일 많이 본다”’, 이데일리, 2022.8.3


빨리 보면서도 내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중요해진 것이 자막이다. 미국 언어교육 앱 ‘프레플리(Preply)’의 2022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70%와 밀레니얼 세대의 53%는 청력 이상 여부와 무관하게 자막을 켜고 영상을 시청한다.



자막 서비스는 줄 거리를 이해하고(74%) 화면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도움(68%)이 될 뿐만 아니라, 말한 내용을 놓쳐 되감는 일을 줄여준다(55%)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넷플릭스 는 2022년에 공개한 오리지널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시즌 4에서 대사뿐만 아니라 인물의 움직임과 질감까지 자막으로 처리하며 자막의 표현 범위를 넓히고 있다. 2) 최단시간 몰아보기: ‘요약 주행’ 콘텐츠를 더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면 ‘요약본’이 답이다.


유튜브의 요약 영상을 이용하면 약 12시간 분량인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2022)’을 끝까지 몰 아보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 콘텐츠 요약 전문 유튜버가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화 제작뿐만 아니라 단편 영화, 애니메이션, 심지어 흥행 실패작에 대한 요약본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JTBC의 콘텐츠 정보 프로그램 ‘방구석1열’은 소개하는 콘텐츠의 줄거리 요약 영상을 아예 유튜버에게 맡기기도 했다.



과거에도 영화를 요약해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은 존재했 으나, 공개하는 내용이 크게 달라졌다. 최근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있는 요약본은 ‘예고편의 확장판’을 넘어 줄거 리와 반전까지 담은 ‘결말 포함’ 콘텐츠이다. 스포일러를 금기처럼 여겼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높은 조회수가 보장된다는 이유로 결말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콘텐츠가 많다.


스포일러 영상에 의한 영화 산업의 피해가 연 1조 원에 달 하는 것으로 추산된 일본에서는 제작사 동의 없이 영상을 공개한 유튜버들이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4 반면 국내 기업들은 쉽고 참신한 볼거리를 원하는 소비자 대상의 홍 보 목적으로 유튜버와 공식 협업을 선택하고 있다.


일례로 구독자가 200만 명을 넘는 유튜버 ‘고몽’이 채널 ENA와 협 업해 만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의 요약 영상은 1,700만 회가 넘는 누적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드라마의 초반 흥행에 기여했다.


4 ‘‘10분 요약’ 영화 동영상 제작 유튜버, 日 법원서 첫 ‘징역형’ 선고’, 한국일보, 2021.11.17


3) 여러 영상을 한 화면에: 슬러지 영상 현재 숏폼(Short-form) 플랫폼에서는 ‘슬러지(Sludge) 영상’이 화제 다. 슬러지 영상은 뉴스, 뮤직비디오, 게임 플레이, 애니메이션 등 서로 관련성이 없거나 적은 복수의 콘텐츠가 화면을 분할해 동시에 재생되는 콘텐츠 형식을 말한다.


한 화면에 하나의 영상만 담겨야 한 다는 암묵적 공식을 깬 슬러지 영상은 멀티태스킹이 자연스러운 젊 은 세대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소비자들은 여러 영상에 시선 이 분산되면서 더 오랜 시간 동안 눈길을 뗄 수 없게 된다.


감상에서 소비로 시간의 가성비를 높이다 [범람하는 콘텐츠] 소비자들로 하여금 영상의 러닝타임을 줄이고 영상을 압축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선 동영상 구독 서비스의 확산으로 소비자들의 콘텐츠 접근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OTT 서비스를 통해 한 달에 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무제한에 가까운 영상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2020년 기준으로 넷플릭스의 미국 콘텐츠 라이브 러리를 전부 보는 데 필요한 시간은 3만6,000시 간에 달했고,5 유튜브의 동영상은 전 세계에 걸쳐 1분마다 500시간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미국에 선 OTT 가입 가구 중 4개 이상의 스트리밍 서비 스를 구독하는 가구의 비율이 2019년 11%에서 2022년 35%로 늘었다. 가입자들이 가장 선호하 는 4종 구성(넷플릭스, 훌루, 아마존프라임비디 오, 디즈니플러스)으로 2023년 1월 기준 이용 가 능한 영화와 시리즈물의 수는 2만2,000여 개를 넘는다.


이제 소비자들은 집에서 쉴 때뿐만 아니라 가사를 하거나 이동 중에도, 심지어 업무 중의 자투리 시간까지 활용해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매순간 기하급수로 늘 어나는 흥미로운 콘텐츠를 틈틈이 더 많이 소비하는 데에는 러닝타임 단축이 도움이 된다.


관심있는 콘텐츠를 빠르게 보고 나면, 구독을 중단해 비용을 아낄 수도 있다. 여러 콘텐츠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쏟아지는 SNS 상의 밈(Meme)6 을 제때 즐기는데에도 효과적이다.


5 ‘How Long Would It Take to Watch All of Netflix?’, What’s on Netflix, 2020.3.31 6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이나 행동을 모방해 만든 문구·사진·영상, 또는 그것을 퍼뜨리는 문화 현상


[선택의 역설] 무제한의 콘텐츠는 소비자들에게 보석 같은 이야기를 발견 할 가능성과 함께 더 큰 선별의 딜레마도 안겨주었다. OTT 사용자들의 72%는 시청할 콘텐츠를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며, 26%는 원하는 콘 텐츠를 찾아 정착하기까지 10분 이상을 소비하고 있다.7 추천 서비스나 후 기의 도움을 받아도 끝까지 만족스러울지 확신을 갖기는 여전히 어렵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화제작조차 후속편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늘어지는 경 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처음부터 정주행을 시도하기 보다 요약본이나 빨리 감기 로 콘텐츠의 내용을 신속하게 검증하면, 그걸로 충분한 콘텐츠와 제대로 볼 콘텐츠를 구분해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유튜버 ‘고몽’은 이 러한 현상을 두고 “리뷰를 보고 드라마 시청 여부를 판단하고, 리뷰 콘텐츠 자체를 즐기는 시청층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이는 주목받지 못했던 콘텐츠의 역주행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가출 청소년 의 삶을 다룬 독립영화 ‘박화영(2018)’은 극장 개봉 당시 누적 관객수는 5,700여 명에 그쳤지만 같은 해 유튜브에 업로드 된 리뷰 영상 조회수가 1,000만 회를 돌파하며 입 소문을 탔다. 마침내 영화가 2019년에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박화영’은 ‘비공식 천 만 영화’로 화제가 되었고 ‘학폭 미투’라는 사회적 흐름까지 촉발했다. [편집자적 재미] 신중하게 콘텐츠를 선별해도, 대사가 없는 구간이나 이야기의 기승전 결을 ‘빌드업8 ’하기 위한 ‘고구마 구간(답답한 전개)’이 나타나면 소비자들은 빨리 감기 나 건너뛰기의 유혹을 느끼게 된다.


특히 모바일 기기로 영상을 시청하며 오로지 자신 이 원하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데 집중하는 소비자들은 심심하거나 궁금하지 않은 내 용까지 참고 견딜 이유가 없다. 그럴 때 지루한 장면을 빨리 감거나 건너뛰면서 자극 의 밀도를 높이면 시시한 스토리도 한층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흥행 실패작에 대한 요약 콘텐츠의 인기는 콘텐츠의 압축을 통해 재미를 끌어올릴 수 있음을 방증한다. 한 뉴미디어 전문가는 ‘가처분 소득’처럼 콘텐츠에 투자할 수 있는 ‘가처분 주목’이라 는 개념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일본에서는 ‘시간의 가성비’를 뜻하는 단어 ‘타 이파(タイパ)’가 2022년 올해의 신조어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9 제한된 시간과 주의력의 가성비에 민감한 소비자들에게, 콘텐츠를 편집해 소비하는 기술은 선택한 콘텐츠에 대한 만족도까지 한 단계 높일 방안이 된다.


7 ‘Reinvent for Growth’, Accenture, 2023.1 8 큰 목적을 이루거나 반전을 꾸미기 위해 미리 하나씩 준비하는 과정 9 ‘‘타이파’시대, 변화하는 일본의 소비문화’, CHIEF EXECUTIVE, 2023.1


소비자들의 시간과 주의력을 아껴주는 솔루션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전문가의 추천을 나침반 삼아 좋은 콘텐츠를 발굴하고, 하나하나 깊이 몰입 해 감상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전지적 편집자’로 탈바꿈한 오늘날의 소비자들 은 우선 콘텐츠의 가치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면 즉시 다음으로 넘 어간다.


콘텐츠 소비자들의 달라진 속도 감각은 언제나 이들을 주목하고, 소통하고, 눈길을 사로잡아야 하는 기업에 공통의 화두를 제시한다. 첫째, 소비자의 콘텐츠 선택 전후의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숏폼, 롱폼 여부를 떠나 소비자들은 원하는 재미 요소를 담은 콘텐츠가 맞는지 빠르게 확인하고 압축적으로 즐기기를 원한다. 이때 요약 영상은 오리지널 콘텐츠의 선별 수단이자 진입 경로로 서 유용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는 콘텐츠로 소비될 수 있다.


소비자 들이 오리지널 콘텐츠와 풍부한 2차 창작물을 매끄럽게 넘나들 수 있는 연결고리를 제공하는 것은 부가적인 즐길 거리를 확장해 콘텐츠 경험의 가성비를 높이는 데에 도 중요하다.


둘째, 소비자의 보다 자유로운 ‘편집자적’ 콘텐츠 소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소비자 들이 최소한의 집중력으로도 자신이 선택한 콘텐츠의 내용을 놓치지 않게 돕는 것은 일차적으로 콘텐츠 서비스의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플랫폼 기업들의 과제일 것이 나, 경험 환경을 뒷받침하는 하드웨어 제조기업도 고민할 부분이 많다.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 수단을 풍성하게 제공하고, 편집 도구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기기 의 형태나 다수 기기 간의 연결 기능, 사용자 경험을 고안하는 것은 능동적인 콘텐츠 소비자뿐만 아니라 시니어나 장애인 등 접근성 향상을 원하는 고객들을 폭넓게 만족 시킬 것이다.


셋째, 고객 및 구성원과의 소통 경험에도 효율을 높이기 위한 창의적 전략이 필요하 다. 오늘날 달라진 콘텐츠 소비자들은 또한 기업의 고객이자 구성원으로서 수많은 정 보에 노출되고 있다.


필수적이지만 흥미를 끌기 어려운 기업 콘텐츠의 내용을 소비자가 쉽고 빠르게 인지하도록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거나, 콘텐츠의 형태와 배포 방식에 다양성을 가미하는 전략은 앞으로 더욱 유용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아한형제들’은 형식적으로 넘기기 쉬운 개인정보보호나 자금세탁방지에 관한 법정필수교육을 인기 TV프로그램을 패러디해 자체 제작하고 매년 콘텐츠를 갱신, 변화하는 구성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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